
이 글은 해적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Corsairs Legacy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Mauris 스튜디오가 전반적인 해양 테마와 해적 게임을 대중화하기 위해 준비한 기사입니다. 프로젝트 소식은 공식 웹사이트와 YouTube 채널, 그리고 Telegram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키릴 나자로엔코(Kirill Nazarenko)는 가장 유명한 해적 소설 가운데 하나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Treasure Island)』과 그 속에 담긴 허구와 현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글은 Sea Dogs, Assassin's Creed IV: Black Flag, Pirates of the Caribbean, Black Sails 같은 해적 게임과 시리즈의 팬들을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의 강연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작품 속에 등장하는 허구와 현실의 문제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짧은 생을 살았고,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44세라는 이른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삶 동안 상당히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보물섬 — 허구인가 현실인가? 키릴 나자로엔코. 『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그의 문학 활동은 19세기 70년대 후반, 두 편의 단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그에게 곧바로 명성을 안겨 주었는데, 바로 『자살 클럽(The Suicide Club)』과 『라자의 다이아몬드(Diamond of the Raja)』입니다. 우리는 이 두 작품을 영화 『플로리젤 왕자의 모험』을 통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2년 후 그는 『모래 언덕의 집(The House on the Dunes)』을 발표했고, 1881년에는 처음으로 잡지 연재 형식으로 『보물섬(Treasure Island)』을 실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다지 큰 반향을 얻지 못했습니다. 몇 년 뒤, 단행본으로 책이 출간되고 나서야 비로소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 이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삽화의 힘도 컸습니다.
1884년에는 『검은 화살(Black Arrow)』이 출간되었고, 이어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The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 『발란트래이의 주인(The Master of Ballantrae)』, 그리고 스티븐슨이 완성한 마지막 장편소설인 『난파자들(The Castaways)』이 나왔습니다.
물론 스티븐슨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소설은 『보물섬』입니다. 1880년대 중반 영국에서 책으로 출간된 지 불과 2년 만에 러시아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지요. 그리고 영화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하자 곧바로 『보물섬』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제작되기 시작합니다. 무성 영화 2편, 영어 음성 영화 6편, TV 영화 4편, TV 시리즈 13편이 만들어졌고, 이 외에도 다양한 언어로 된 영화, 연극, 라디오 드라마, 만화 등 수많은 각색이 이어졌습니다.
첫 번째 러시아 영화화는 1937년 V. 바인슈톡 감독이 제작했습니다. 이 첫 영화에서 롱 존 실버 역을 맡은 배우는 오시프 압둘로프였습니다. 전반적으로 극적 구성의 관점에서 보면 실버의 역할은 이 이야기의 어떤 영화화에서도 가장 강렬한 배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두 편의 영화가 더 나왔는데, 1971년 예브게니 프리드만의 영화와 1982년 블라디미르 보로뵈프의 영화입니다. 이 작품들에서 실버는 각각 보리스 안드레예프와 올레그 보리소프가 연기했습니다.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러시아/소련식 『보물섬』 각색은 키이우의 Kyivnauchfilm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다비트 체르카스키의 애니메이션일 것입니다. 여기서 롱 존 실버의 목소리는 아르멘 지가르하냔이 연기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독특한 형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장면과 함께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실사 장면이 교차합니다. 더불어 이 실사 장면들은 옛날 영화처럼 스타일링되어 있습니다.
1971년과 1982년 영화화를 보면, 이 두 작품은 원작에 상당히 충실합니다. 그러나 1937년의 첫 영화화는 특히 한 부분에서 원작과 크게 다릅니다. 그 작품에서는 짐 호킨스가 아니라, 보물을 찾기 위해 남자로 변장한 소녀 제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이제 소설 자체로 돌아가 보면, 스티븐슨이 참고한 주요 자료는 17–18세기 고전 해적의 역사를 다룬 두 권의 대표적인 책 가운데 하나, 찰스 존슨(Charles Johnson)의 『악명 높은 해적들의 약탈과 살인에 대한 일반사(A General History of the Robberies and Murders Committed by the Most Notorious Pirates)』였습니다. 다만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고, 한때는 『로빈슨 크루소』의 작가 대니얼 디포(Daniel Defoe)가 쓴 것이라는 견해도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보물섬 — 허구인가 현실인가? 키릴 나자로엔코. 대니얼 디포
하지만 오늘날 연구자들은 찰스 존슨이 실제 인물이었으며, 이 모든 이야기를 기록한 어떤 선장 출신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이 책이 상당 부분 허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몇몇 삽입된 이야기들을 제외하면 비교적 현실에 가까운 자료라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무엇보다도, 책에서 언급되는 해적들의 활동을 보여 주는 문서가 새로 발견될수록 이 책에 대한 신뢰도는 더 높아지고 있으며, 존슨의 기록은 상당한 수준의 팩트체크를 견뎌 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당시 카리브 해의 저명한 해적들에 대해 떠돌던 소문과 이야기, 정보들을 비교적 충실하게 정리한 보고서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그 분위기 자체를 이해하려면 역사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해적 이야기의 정치적 배경은 무엇보다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War of the Spanish Succession)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제0차 세계대전”이라 부를 만한 전쟁을 찾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나폴레옹 전쟁, 7년 전쟁,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처럼 유럽의 대부분과 전 세계로 전선이 확대된 전쟁들이 그 후보로 거론됩니다.
물론 이런 명칭은 어디까지나 조건적입니다. 우리는 세계대전을 “큰 전쟁”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고, 그래서 뭐든지 규모가 크면 세계대전이라고 부르고 싶어 합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은 그 규모에도 불구하고 형식상으로는 북방 전쟁과 병행해 진행되었습니다. 두 전쟁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지요. 이것은 유럽 대륙에서 서로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두 개의 큰 전쟁이 동시에 벌어진 마지막 시기였습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는 영국,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 여러 국가로 이루어진 강력한 연합군이 프랑스에 대항했습니다. 전쟁의 원인은 스페인 왕위 계승 문제였습니다. 후사가 없던 스페인 왕 카를로스 2세가 죽기 전에 자신의 먼 친척이자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손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프랑스와 스페인 왕국이 통합될 위험이 발생했습니다. 이 통합이 실현되면 프랑스-스페인 연합은 유럽에서 압도적인 강대국이 될 수 있었고, 이는 다른 모든 국가들에게 위협 그 자체였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세력 확대를 두려워한 국가들은 즉각적으로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전쟁은 엄청난 비용을 요구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이 끝났을 때 각 국가의 연간 예산의 5–7배에 달하는 막대한 국가 부채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들은 사실상 일종의 국가적 금융 “마술”을 통해서만 이 재정적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결국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스페인 왕위에 자국의 왕위를 올려놓는 데 성공했지만, 기대했던 “보너스”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이 전쟁을 “앤 여왕의 전쟁(Queen Anne's War)”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이 여왕의 통치 기간 대부분이 바로 이 전쟁과 겹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물론 이 전쟁에는 항상 사략선(corsair)의 활동이 동반되었습니다. 정규 해군력을 지원하기 위해 교전국들은 모두 사략선들을 모집했습니다. 즉, 개인이 자신의 비용으로 배를 장비하고 국왕의 위임장(letter of marque)을 받아 적국의 상선 및 군함을 나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은 것입니다.
이 시대에 사략선은 엄청난 규모로 확산되었고, 전쟁이 끝나 일자리를 잃은 사략선 선원들 가운데 일부는 해적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찰스 존슨의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유명 해적들은 18세기 10–20년대에 활동했습니다.

보물섬 — 허구인가 현실인가? 키릴 나자로엔코. 찰스 존슨 『악명 높은 해적들의 약탈과 살인에 대한 일반사』
그러나 정치적 배경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1688년, 가톨릭교도였던 영국 왕 제임스 2세가 폐위되었습니다. 당시 영국의 대다수 인구는 프로테스탄트였기 때문에 이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습니다. 반면 아일랜드는 거의 전부가 가톨릭 국가였고, 왕국 곳곳에는 비밀 가톨릭교도도 적지 않았습니다. 영향력 있는 정치 세력들은 영국에서 다시 가톨릭을 국교로 복원하거나, 적어도 가톨릭에 대한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고자 했습니다.
제임스 2세의 폐위는 이러한 치열한 정치·종교적 투쟁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축출되고, 그의 사위이자 네덜란드 총독이었던 윌리엄 3세가 왕위에 오릅니다. 그러나 제임스 2세는 영국을 떠나 망명했고, 그의 아들과 손자는 이후에도 자신들을 정통성 있는 왕이라고 주장하며, 주로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여러 차례 영국 왕위를 되찾기 위한 심각한 시도를 감행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1745년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컬로든 전투(Battle of Culloden)에서 스코틀랜드군이 패배하면서 막을 내립니다. 이 전투는 반란을 이끌었던 젊은 프린스 찰리의 이야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당시 영국의 국내 정치 상황은 매우 긴장된 상태였습니다. 제임스 2세가 축출된 뒤 그의 지지자들 가운데 일부는 무기를 들고 복수를 감행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고, 여기에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끝난 뒤의 실업 문제까지 겹치면서 많은 이들이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복수를 꿈꾸게 됩니다.
한편, 당시 유럽에는 “보물의 향기(Smell of Treasures)”가 떠돌고 있었습니다. 이는 이야기 전반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실제로는 해적들이 그토록 자주 막대한 전리품을 얻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디선가 누군가 엄청난 보물을 손에 넣었다”는 소문이 유럽 곳곳에 퍼지면서 모험가들과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들의 상상력을 엄청나게 자극했습니다.
예를 들면,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시작된 1702년, 미대륙에서 수많은 보석을 실어 오던 스페인 함대가 영국-네덜란드 연합 함대에게 비고만(Vigo Bay)에서 기습을 당해 침몰했습니다. 그러자 “엄청난 금액의 보물이 모두 바다에 가라앉았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러나 현대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이 보물의 대부분은 연합 함대가 들이닥치기 전에 이미 하역되어 안전한 곳으로 옮겨진 뒤였습니다.
또 다른 예도 있습니다. 1715년에는 은괴를 실은 스페인 선박 11척이 플로리다 해안에서 난파했습니다. 스페인 측은 대부분의 보물을 회수해 아바나로 옮겼지만, 당대의 유명 해적 헨리 제닝스(Henry Jennings)가 이 중 일부를 탈취해 8만 7천 파운드 상당의 은을 손에 넣었습니다. 물론 이는 비고만에서 스페인 함대가 운반하던 재화에 비하면 훨씬 적은 금액이지만, 해적들 입장에서는 엄청난 “대박 전리품”이었습니다.

보물섬 — 허구인가 현실인가? 키릴 나자로엔코. 『보물섬』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앞부분을 조금 앞당겨 보자면, 『보물섬』 속의 전설적인 해적 플린트(Flint)는 보물섬에 70만 파운드를 묻어 두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제닝스가 손에 넣은 전리품의 8배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제닝스는 이처럼 막대한 전리품을 기반으로 바하마에 “해적 공화국(Pirate Republic)”을 세웠고, 이 공화국은 12년 동안 존재했습니다.
다만 해적들은 국가와 정면으로 싸울 만큼 강력한 세력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어떤 섬에 수비대가 없거나 병력이 부족한 “권력의 공백”을 이용하는 것뿐이었지요. 당시 식민지는 매우 넓게 퍼져 있었고, 유럽의 어느 나라도 모든 영토를 철저히 통제할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해적들은 어느 한 국가의 항구를 거점으로 삼아 사략선으로 활동해야 했습니다. 즉, 검은 해적 깃발을 휘날리며 바다를 떠도는 완전히 자유로운 해적은 실제로는 매우 드물었고, 대부분 어떤 국가의 묵인 혹은 암묵적 지원을 받으며 움직였습니다. 국가가 해적들의 “장난”을 눈감아 주거나 심지어 경쟁국을 괴롭히기 위해 지원할 때에만 해적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활약할 수 있었습니다.
17세기 말에는 또 다른 유명한 사건이 두 번 있었습니다. 토머스 튜(Thomas Tew)와 헨리 에이버리(Henry Avery)가 인도 무굴 제국의 왕실 선박을 나포한 사건입니다. 이때 전리품은 엄청났습니다. 토머스 튜의 경우, 해적 한 사람당 1200–3000파운드를 나누어 가졌고, 헨리 에이버리의 경우에는 한 사람당 1000파운드와 여러 개의 귀한 보석을 분배받았습니다. 이 보석들은 당시 배 안에서 제대로 감정할 수 있는 보석 감정사가 없어서 정확한 가치를 매기지 못했다고 합니다. 토머스 튜와 헨리 에이버리가 거둔 전리품은 문서로 비교적 잘 기록된 사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해적 전리품에 속합니다.
『보물섬』 소설 속에는 실제 역사에 등장하는 해적들이 몇 명 언급됩니다. 바로 에드워드 티치(Edward Teach) – 블랙비어드(Blackbeard), 그리고 윌리엄 키드(William Kidd)입니다. 티치는 상당히 이국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온몸이 털로 뒤덮인 듯한 거대한 수염은 당시 기준으로 야만성과 잔혹함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외모를 일부러 무섭게 보이도록 연출했는데, 모자 아래에 불붙은 도화선을 꽂고, 어깨에는 여러 자루의 권총을 둘러 멘 채 등장했습니다. 그의 잔혹함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상당수는 과장된 면이 있지만 말입니다. 한편 윌리엄 키드는 지금은 “가장 결백한 해적”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는 본래 합법적인 사략선 선장이었지만, 서류 처리의 문제와 영국 정부 내 정치적 음모에 휘말리며 결국 해적으로 몰린 인물이었습니다.
『보물섬』에는 바솔로뮤 로버츠(Bartholomew Roberts)와 에드워드 잉글랜드(Edward England)라는 해적도 등장하는데, 이들은 롱 존 실버가 복무했던 해적 선단의 선장으로 묘사됩니다. 이 설정은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가늠하는 기준이 됩니다. 둘 다 18세기 10–20년대에 실제로 활동한 인물이며, 소설에서 실버의 나이는 50세로 묘사됩니다. 이를 감안하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8세기 1730년대쯤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습니다.
1722년 이후 해적 활동은 급격히 쇠퇴했고, 카리브 해는 사실상 해적들로부터 정리되었습니다. 다시는 그만한 규모의 전설적인 해적들이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1730–40년대에 플린트 같은, 로버츠나 잉글랜드, 키드, 블랙비어드 못지않게 악명 높고 성공적인 해적이 존재해 70만 파운드를 무인도에 묻었다는 설정은 다소 상상력에 기대고 있습니다.
스티븐슨은 작품 안에서 1740–50년대의 사건들도 언급합니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760년대가 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설의 배경을 18세기 1730–40년대로 보는 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물섬 — 허구인가 현실인가? 키릴 나자로엔코. 1982년 영화 『보물섬』
더 넓게 보아 “해적”이라는 현상 자체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해적은 카리브 해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해적들은 항상 대규모 상선 항로와 가까운 해안 지역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즉, 거대한 무역 루트가 존재하고, 그 루트 인근에 거점을 세우기 좋은 해안이나 섬이 있을 때 해적 활동이 활발해질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오늘날에도 소말리아 해역이나 싱가포르 인근 해역처럼 해적 활동이 위험한 곳이 존재합니다.
『보물섬』에는 몇몇 다른 역사적 인물들도 언급됩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벤보 제독(Admiral Benbow)입니다. 그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당시 마지막 전투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펼쳐 유명해졌습니다. 그 전투에서 그는 다리를 잃고, 결국 부상으로 사망했으며, 영국의 국민적 영웅으로 기억됩니다. 작품 속의 여관 이름도 바로 이 인물에서 따온 것입니다.
에드워드 혹(Edward Hawke)도 등장합니다. 실버는 자신이 혹 제독의 지휘하에 복무하다가 다리를 잃었다고 말하지요. 이는 아마도 1759년 키브롱 만(Quiberon Bay) 해전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이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는 패배하고, 영국 해안에 대한 상륙 작전은 좌절됩니다. 이 승리 덕분에 혹 제독의 명성은 매우 커졌고, 많은 선원들이 “나는 혹 제독 휘하에서 싸웠다”라며 자신을 과시하고자 했습니다.
스티븐슨은 아마도 이런 상황을 작품에서 활용한 것 같습니다. 혹 제독 휘하에서 싸우다 다리를 잃었다는 것은 단순한 사고로 다리를 잃는 것보다 훨씬 명예로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데 능숙한 실버가 이런 이야기를 이용해 주변 인물들의 호감을 사려 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이 설정은 작품의 시간을 1760년대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는 이 연대 설정에 회의적입니다. 스티븐슨은 역사적 사실과 치밀한 고증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해적에 관한 존슨의 책을 읽고 흥미로운 모험 소설을 썼을 뿐입니다. 참고로, 라파엘 사바티니(Rafael Sabatini)는 『블러드 선장(Captain Blood)』에서 역사적 사실을 훨씬 더 세심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그가 소설을 쓰면서 관련 역사서를 꼼꼼히 읽었다고 믿어도 좋습니다.
닥터 리브시(Dr. Livesey)는 자신이 컴벌랜드 공작(Duke of Cumberland)의 군대에서 폰트누아(Fontenoy) 전투에 참전했다고 언급합니다. 이 전투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일부로, 영국·네덜란드·오스트리아 연합군이 프랑스의 명장 모리스 드 삭스(Maurice of Saxony)가 이끄는 프랑스군에게 패한 사건입니다. 컴벌랜드 공작은 조지 2세의 셋째 아들이자 조지 3세의 형제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아나크로니즘(시대착오)이 있습니다. 닥터 리브시의 말에 따르면 그는 컴벌랜드 공작 휘하에서 장교로 복무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영국에서 의사의 사회적 지위는 상당히 낮았고, 당시에는 장교 계급을 돈으로 사서 진급해야 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다시 의사가 되는 경우는 상식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영국에서 의사는 지방 지식인을 대표하는 매우 중요한 문화적 인물로 자리 잡습니다. 침착하고 균형 잡힌 태도를 지닌 의사는 지방 사회에서 상담자이자 보호자로 인식됩니다. 스티븐슨의 닥터 리브시, 사바티니의 블러드, 코난 도일의 왓슨 박사에게서 이런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스티븐슨이 살던 시대, 즉 19세기 후반의 영국에서 의사의 사회적 위상은 매우 높았지만, 18세기에 의사는 반쯤 돌팔이 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의사가 치안판사(Justice of the Peace)를 겸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럼에도 소설 초반, 벤보 제독 여관에서 빌리 보운즈가 난동을 부릴 때 닥터 리브시는 자신이 치안판사이기도 하다고 말하며 그를 처벌하겠다고 합니다. 이 역할은 원래 트릴로니 영주(Squire Trelawney)가 맡았어야 더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실제로 닥터 리브시는 작품 속에서 너무 많은 역할을 떠맡고 있습니다.

보물섬 — 허구인가 현실인가? 키릴 나자로엔코. 애니메이션 『보물섬』의 닥터 리브시
이제 등장인물들의 외모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당시 선원들은 짧은 재킷을 여러 겹 겹쳐 입고, 18세기 중반에 큘로트(culottes)를 대신하게 된 긴 바지를 착용했습니다.
선장들은 화려한 복장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18세기 사람들이 항상 아주 선명하고 눈부신 색상의 옷을 입었던 것은 아닙니다. 17세기 말~18세기 초에는 화려한 남성 복식이 유행하기도 했고, 1710년대에는 색감이 강한 의상이 다시 유행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겉에서 보기엔 비교적 절제된 색상의 옷을 입었습니다. 대신 매우 값비싼 자수나 고급스러운 카미솔(조끼)을 활용해 외형적으로는 단순한 카프탄과 대비를 이루도록 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가발이 유행하던 18세기 내내 가발을 쓰는 사람들은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거나 아예 삭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발은 위생적인 도구로 여겨졌습니다. 가발을 쓰면 머리를 항상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고, 머리를 자주 감지 않아도 되는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가발을 쓰지 않을 때는 머리가 반질반질 빛나는 것을 감추기 위해 반드시 모자를 썼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대머리가 드러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롱 존 실버의 이미지를 살펴보면, 그는 나무다리를 가진 절름발이, 즉 의족을 한 인물입니다. 실버는 여관 주인이고 거지가 아니기 때문에 자갈길에서 마찰로 윤이 난, 비교적 단정한 의족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 형태는 결국 절단된 다리에 묶어 고정한 하나의 나무 막대에 불과했겠지만요.
소설의 러시아어 번역 가운데 한 구절에서는 실버가 “구리 단추가 달린 파란 카프탄과 금빛 레이스가 둘러진 모자를 쓰고 갑판을 걷고 있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번역 오류입니다. 여기서 “골든 레이스(golden lace)”는 우리가 생각하는 레이스가 아니라, 모자 가장자리를 장식하는 금빛 갈론(galloon), 즉 금실로 짠 장식 테이프를 의미합니다.
레이스라는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런 모자는 “파디스팡(padispan)” 또는 프랑스어로 “포앵 데스팡(point d'Espagne)”이라 불리는 형태가 됩니다. 이는 스페인식 스티치로 만든 매우 값비싼 금 레이스로, 사실상 장군이나 제독 같은 최고위급 인물만이 사용할 수 있는 사치품이었습니다. 심지어 장교라도 이런 장식품을 사용하기는 어려웠고, 배의 요리사에게는 완전히 어울리지 않는 물건입니다. 반면 좁은 금 갈론은 선원 출신에서 승진한 상급 부사관에게 허용되는 장식이었고, 소맷부리나 칼라, 모자 테두리 등에 달아 자신의 지위를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히스파니올라(Hispaniola)는 소설에서 명확히 “스쿠너(schooner)”라고 언급됩니다. 스쿠너는 사선(斜線) 돛을 단 선박입니다. 하지만 작품 속 히스파니올라는 하부 돛은 사선돛, 상부 돛(돛대 위쪽의 톱세일)은 횡선돛입니다. 그러니까 이 배는 스쿠너와 바크(barque – 횡선돛을 단 범선)의 장점을 결합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쿠너의 가장 큰 장점은 돛을 갑판에서 조종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돛을 조정하기 위해 마스트 꼭대기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승조원 수를 줄일 수 있었고, 이는 상선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럽의 상선들은 대개 두 개의 마스트를 가진 스쿠너 타입이었고, 이들은 대서양을 건너는 항해는 물론, 유럽 해안을 따라 움직이기에도 충분한 항해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경제성과 내구성, 가격 면에서도 일반 선주들이 소유하기에 적합한 배였습니다.
흔히 선박의 갑판에는 작은 보트가 한 척 실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히스파니올라에는 보트가 세 척이나 실려 있습니다. 이는 상당히 특이한 설정입니다. 아마도 스티븐슨은 여기서 19세기 후반의 현실을 18세기 배경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18세기에는 보트를 “구명정”으로 보는 개념이 없었고, 배가 난파되면 선원들은 흔히 부유물이나 잔해에 매달려 탈출했습니다. 작은 스쿠너에는 보통 보트 한 척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러니 세 척의 보트는 다소 과장된 설정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일부 선원들이 보트를 타고 섬으로 떠나는 사건을 구성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미국으로 향하는 항로에 대해서도 짚어 보겠습니다. 소설의 영웅들은 브리스톨에서 출항합니다. 브리스톨은 당시 영국 서해안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였고, 특히 카리브 해와의 무역을 담당하는 주된 항구였습니다. 따라서 브리스톨을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매우 논리적인 선택입니다.
그들은 아조레스(Azores) 군도 방향으로 기수를 돌려 항해합니다. 이 루트는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갈 때 바람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항로입니다. 실제로 이들은 대앤틸리스 제도(큰앤틸리스)를 향해 가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18세기 초 카리브 해의 해적 활동 지리적 중심이 이 지역이었기 때문에, 플린트가 보물을 묻었다면 이 일대가 가장 가능성 높은 후보입니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인물들은 보물섬에서 떠난 뒤 어느 스페인 항구에 빠르게 도착합니다. 아마도 쿠바의 항구였을 것입니다. 쿠바는 큰앤틸리스 제도 남서쪽, 바람을 등질 수 있는 방향에 위치해 있고, 히스파니올라처럼 승조원이 부족한 배로도 비교적 쉽게 도달할 수 있는 항구였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장면은 사과통 옆에서 들은 실버의 대화입니다. 그 대화 속에는 “판자 위를 걷게 하는” 처형법, 즉 해적이 죄수에게 판자를 밟고 바다로 걸어가게 하는 방식의 처형이 등장합니다.

보물섬 — 허구인가 현실인가? 키릴 나자로엔코. 해적 처형 방식 중 하나인 “판자 위를 걷기”
하지만 실제로 해적들이 굳이 이런 복잡한 처형 방식을 사용했는지에는 의문이 있습니다. 죄수를 죽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저 그를 곧장 바다로 밀어 버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장면은, 고대 작가의 이야기 가운데 “해적들이 부유한 승객에게 바다 한가운데 gangway를 내려 ‘이제 상륙하라’며 조롱한 뒤 그를 수장시켰다”는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 고대의 잔향일 수도 있습니다.
히스파니올라에서 탈출하는 장면을 보면, 포수 이스라엘 핸즈(Israel Hands)와 9파운드 구리 회전포(copper swivel gun)가 등장합니다. 아마 스티븐슨은 여기서 19세기 70년대에 도입된 회전포를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이런 포는 군함의 선미에 설치되어 있었고, 갑판 위에 원형으로 설치된 구리 레일을 따라 회전할 수 있어서 어느 방향으로든 사격이 가능했습니다. 이는 19세기 70년대에 흔히 쓰이던 기술이지만, 18세기에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18세기에는 대포를 바퀴 달린 대포차에 올려 갑판 위에서 이리저리 굴려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9파운드포는 히스파니올라처럼 작은 스쿠너가 싣기에는 너무 큰 화포였습니다. 당시 이런 배에는 보통 3~4파운드포 정도가 탑재되었습니다.
여기서 스티븐슨은 아마 나폴레옹 전쟁 시대에 대한 자료를 읽은 기억을 18세기 배경에 겹쳐서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프리깃함은 보통 선수 또는 선미에 9파운드 장포 두 문을 장착했는데, 이는 추격전이나 도주 상황에서 장거리 사격을 위해 사용된 무기였습니다. 이 장포들에 대해 영국 해군 장교들은 자주 열광적인 찬사를 보냈습니다.
스티븐슨은 아마도 이러한 기술적 요소를 떠올리며, 히스파니올라에 “구리 9파운드포”를 탑재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정도 무게의 대포는 작은 선체의 균형을 크게 무너뜨릴 것이기 때문에, 히스파니올라에 9파운드포가 실려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화포를 당시 현실에 맞게 3파운드포로 설정했다면, 작품 속에서 스몰렛 선장이 요새에 대해서 펼쳤던 장쾌한 포격 장면의 박력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영국 국기를 걸고 포격을 가하는 그 장면은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어야 했으니까요.
섬 위에 있는 요새, 즉 블록하우스(blockhouse)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여기에도 몇 가지 섬세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플린트가 왜 그런 시설을 지어야 했는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만약 다른 해적 집단과의 싸움을 대비한 것이라면 그냥 기습 공격을 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정규 해군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방어 시설이라면, 그 블록하우스는 해적들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고, 건설에 엄청난 노동력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목책, 즉 팔리세이드(palisade)입니다. 통나무로 집을 한 채 짓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넓은 영역을 빽빽한 통나무 울타리로 두르는 일은 상당한 노동을 필요로 합니다. 실제로 팔리세이드는 보통 통나무 사이에 사격용 틈을 남겨 두기 때문에 완전히 빈틈없는 벽이 아니며, 그만큼 나무를 절약하기 위한 구조였습니다. 블록하우스 주변, 예를 들어 집에서 30m 정도 떨어진 곳을 둘러싸는 팔리세이드를 상상해 보십시오. 둘레가 약 80m 정도 되는 울타리를 완성하려면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플린트가 왜 이런 수고를 들였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블록하우스 덕분에 『보물섬』의 주인공들은 해적들의 포위 공격을 버텨낼 수 있었고, 스티븐슨은 또 하나의 박진감 넘치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벤 건(Ben Gunn)이 만든 배와, 그 배를 이용해 짐 호킨스가 히스파니올라를 훔쳐 오는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물론 이 배는 아일랜드 전통 보트인 코랙(coracle)입니다. 코랙은 나뭇가지로 만든 골조에 가죽을 씌운, 바구니 같은 형태의 작은 배입니다. 겉보기에는 매우 이상하고 초라한 배이지만, 아일랜드인들은 실제로 이 코랙으로 아일랜드 해를 건너기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투박하지만, 상당히 괜찮은 이동 수단입니다. 다만 제대로 조종하려면 상당한 숙련도가 필요했고, 스티븐슨은 이러한 점을 소설에서 잘 살려, 짐이 이 이상한 배를 가까스로 조종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보물섬 — 허구인가 현실인가? 키릴 나자로엔코. 벤 건이 만든 배, 코랙(coracle)
하지만 한편으로 코랙은 만드는 데 매우 손쉬운 구조이고, 무게가 가벼워서 들고 다닐 수도 있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보물섬의 전리품과 그 분배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70만 파운드는 18세기 기준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입니다. 당시 환율로 환산하면 약 330만 루블에 해당하는데, 이는 18세기 초 러시아 제국의 1년 예산 규모와 맞먹는 액수입니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경우에는 국가 예산의 약 7분의 1에 해당합니다. 개인이 손에 넣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수준의 금액이었습니다.
18세기 화폐를 루블로 환산할 때 저는 은의 무게를 기준으로 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 방식은 매우 정확합니다. 그런데 현대 달러로 환산할 때는 방식이 복잡해집니다. 은 가격만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당시 화폐의 가치를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게 됩니다. 19세기 말에는 은 가격이 급격히 떨어졌고, 18세기에는 금과 은의 가치가 1:15 정도 비율이었지만 현재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18세기 기준 금-은 환율을 사용해 은화의 가치를 금으로 환산하고, 그 다음에 그 금의 가치를 현대 화폐로 다시 계산하는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물론 이런 방식에도 여러 가정이 필요합니다. 그렇다 해도 이 보물이 얼마나 엄청난 규모였는지를 이해하는 데는 충분합니다.
보물은 여러 방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해적식 분배 방식은 비교적 평등한 편이었습니다. 해적선에서는 선장이라 해도 전리품의 3~4몫, 많아야 5몫 정도를 가져가는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왕립 해군에서는 전리품의 대부분이 상층부로 몰렸습니다. 전리품은 함대 전체로 분배되기 전에 상부에서 먼저 떼어가고, 나머지를 나눌 때도 장교와 선원 사이의 사회적 거리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분배되었습니다.
대형 군함에서 승조원이 많을 경우, 보통 선장은 전체 전리품의 3분의 1, 장교들은 또 다른 3분의 1,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을 300~500명에 달하는 일반 선원들 사이에서 나누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런 구조를 감안하면, 선원 한 명이 받는 몫은 선장에 비해 수백 배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18세기 말에는 실제로 영국 함대의 일부 승무원들이 적선 나포에 성공해 전리품을 분배받은 사례가 있었는데, 이때 구명보트에는 선원 4~5명, 장교 1명, 함장 1명이 타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전리품을 3분의 1씩 나누는 방식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나누면 모두 비슷한 금액을 받게 되어 “계급 간 거리”를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선원은 지휘관보다 수백 배 적은 금액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존재했습니다.
이런 점을 종합하여, 저는 『보물섬』 속 전리품이 실제로 분배되었다면 어느 정도의 불평등 구조를 가졌을지 대략적으로 계산해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호킨스의 위치는 배의 종류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해적선에서는 그는 단지 견습 선원, 즉 캐빈 보이(cabin boy)였을 뿐이며, 보통 선원 몫의 절반 정도만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 왕립 해군의 군함에서 그는 젊은 신사(young gentleman) 계층에 속하며, 오랜 복무 끝에 장교로 승진할 가능성을 가진 후보자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함선 의사의 지위는 군함에서 대개 하급 장교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에, 닥터 리브시에게 돌아갈 몫도 그리 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반면 트릴로니 영주는 함선의 소유주이자 원정 전체를 조직한 인물로서 사실상 “제독”의 지위를 가진 인물입니다. 스몰렛 선장은 이론상으로는 그에게 복종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트릴로니와 스몰렛 사이의 갈등은 이러한 지위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주제에 대해 더 읽어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몇 가지 참고 문헌을 추천하고자 합니다. 관련 서적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키르 불리쵸프(Kir Bulychev)가 본명 모제이코(Mozheiko)라는 이름으로 해적사 관련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현재 기준으로 가장 학술적인 연구는 코펠레프(Kopelev)의 저작이며, 모제이코, 마호프스키(Makhovsky), 발란딘(Balandin), 항케(Hanke)의 책들은 대중 교양서에 가깝습니다.
마지막으로, 스티븐슨의 『보물섬』은 어디까지나 문학 작품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싶습니다. 이 소설에는 여러 역사적 인물들의 특징을 모아 만든 등장인물, 허구적인 상황, 극적 구성을 위한 과장이 곳곳에 존재합니다. 결코 해적에 대한 학술 논문이나 역사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물섬』은 탁월한 작품이며, 아마도 세계 문학사에서 “해적”을 다룬 가장 대표적인 소설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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